작성일 : 11-05-05 22:33
시리아, 데라 그곳에는 무슨일이?
 글쓴이 : 이지영
조회 : 1,313  
시리아 그곳에는 지금?

시리아 남부 데라(Deraa), 그곳은 어떤 곳인가?

왜 하필 시리아 남부 지역 다라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많은 유혈 사태가 벌어지고 희생자들이 발생했는가? 시리아 사태로 인해 요르단이나 레바논 한국 대사관에서는 시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철수 권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4월 29일, 금요일 금요 이스람 예배가 끝난 뒤 시리아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이에 대해 시리아 정부는 무력 진압을 강행했고 62명이 숨진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30일 새벽부터 정부군은 다라 지역에 탱크 20여대를 동원해 시위대 검거에 나서 이 과정에서 6명이 숨지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지형적으로 평지이면서 농사지역이고 곡창지대이다. 정부군이 총을 쏘았을 때 몸을 숨길 곳이 없던 시위대가 총에 맞거나 부상을 당하였다.

요르단과 시리아 남부 지역 다라 지역은 근접 지역이다. 다라 지역은 구약성경에는 에디레이로 기록이 되있다. 요르단 람싸 지역과 바로 인접 지역이고 요르단쪽의 지역은 이르비드이다. 서로 가깝다 보니 특히 이 지역은 요르단 사람과 시리아 사람이 서로 결혼한 비율이 높다. 그래서 평소에도 서로 왕래가 잦다. 그래서 다라지역에서 사태가 발생하자 시리아 정부에서는 요르단과의 국경을 차단해버렸다. 더 큰 소요를 막기 위해서인 것 같다.

에드레이는 구약성경의 출애굽 당시 아모리족 바산왕 옥이 다스리던 영토였다. 모세가 광야생활 40년을 거의 마치고 느보산에 도착하기 위해 지금의 요르단 헤스본에 수도를 둔 아모리 족의 시혼 왕의 영토를 통과하기를 원했지만 그가 거절하자 그와 싸워 땅을 차지해 버렸다. 그리고 그를 도우러 이곳 에드레이에서 헤스본까지 온 바산 왕 옥과도 싸우고 내친김에 그의 영토도 차지해 버렸다. 바산 지방은 구약시대부터 소와 소나무가 많기로 유명하고 땅도 비옥하여 모세는 이 지역을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다. (민 21:33-35, 신 3:1-13)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왕 옥이 그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찌니라” (민 21:33-33)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이었던 아르곱 온 지방 곧 온 바산으로는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신 3:13)

이곳 다라 지역은 내 인생에 있어서도 역사적인 곳이다. 2006년 4월 23일,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때도 4월말로서 완연한 봄 날씨였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너무나 파랗고 맑았고 날씨는 너무 선선하였다. 우리는 암만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요르단-시리아 국경인 람싸 국경을 통과하여 시리아에 입국하였다. 미국에 사는 한국 목사님들과 몇 명 사모님들까지 모두 합해 열댓명이 이곳에 성지순례를 왔었고 그 중에 요르단-시리아-레바논 전 일정 여행 조정 및 안내까지 내가 맡아서 했었다. 그래서 요르단 순례를 마치고 막 시리아로 입국을 했던 날이었다. 다라 지역에서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는 차로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점심은 다마스커스 식당에 예약이 되있었다. 시리아에 입국하여 입국 수속을 마치고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달리고 있는 동안 시리아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하고 있었던 기억으로 볼 때 국경에서 출발한지 대략 20분 정도가 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앞서가던 승용차가 갑자기 서행을 하기 시작하자 우리가 탔던 버스도 갑자기 서행을 하며 하마터면 부딛힐 뻔한 상황까지는 내가 기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꽝하고 대형 사고가 터진 순간부터는 아무 기억이 없다. 버스가 종이처럼 구겨질 정도의 큰 사고였기 때문에 그런 와중에 내 몸이 너무 크게 부디쳐 그만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뒤쫓아 달려오던 무지막지한 트럭이 서행을 못하고 뒤에서 그만 우리 버스를 들이 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버스에 타고 있던 70이 넘으신 목사님 한 분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그 사모님은 내장들이 파열되고 척추 뼈가 부러져 급하게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은 의식이 깨어나지 못하고 뒤 따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흘 동안 다라 국립 병원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팔에 닝겔을 꼽고 병원에 있는 시간은 나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먼저는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보았다. 왜 나는 죽지 않고 살았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살려두셨을까? 죽기로 보면 나는 제 1번 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서서 시리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안전 장치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손님들은 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한결 안전했다. 대형교통사고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이후 어떻게 사는 것이 나를 살려두신 하나님께 보답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 될까?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 늘 사도 바울을 부러워했었고 하나님께 사도 바울과 같이 화끈한 회심의 사건을 내게도 주신다면 나도 사도 바울처럼 그런 획기적인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고 변명을 해왔었다. 그랬던 내게 사도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을 하게 되었는데 (행 9장), 그 길목에서 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계기를 주셨고 더 이상 내 인생에 변명의 여지를 없게 만드셨다.

둘째로 늘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나그네라고 생각하며 살긴 했지만 어쩜 그것은 지극히 추상적이었음을 깨달았다. 정말 죽음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장 이 순간 갈 수도 있다는 급박감을 느꼈다. 나의 마지막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죽음의 문턱을 한번 밟아보고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나는 갈 준비가 되었는가? 늘 냉철하게 물으면서 살고 있다.

셋째 내가 아프고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을 때 과연 나를 위해 슬퍼해주고 위해서 뭔가를 해준 사람들이 있는가? 거의 없다. 왜일까? 나도 한번도 어렵고 고통당한 사람들을 위하고 함께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헛 인생을 살았구나라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에는 정말 고통당하고 아프고 가난하여 어려운 사람들이 많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은 살아오면서 이번이 처음이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나의 귀한 마음과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어렵고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해 써야함을 느낀 귀한 시간이 되었다.

넷째, 무소유 정신이다. 난 오늘도 좀 더 많은 지식과 물질과 물건들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인 나그네 인생이다. 언제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할지 알 수 없다. 죽을 때 아무 것도 가져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염세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산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뭔가를 쌓아두려고 하는 인생보다는 순간 순간 영혼이 행복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깨달은 귀한 시간이었다. 평소에 늘 생각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성경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고 내 개인적인 인생에도 죽었다 살아난 아주 중요한 시리아 다라 지역에 평화가 임할 수 있길 빈다.



이지영
암만, 요르단


이지 여행사 Easy Travel & Touris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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