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06-22 01:52
튀니지를 가다
 글쓴이 : 이지영
조회 : 1,813  
2013년 6월 11일, 튀니지를 방문했다.

6월 중순인데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한 낮의 태양은 역시 중동이라
강렬하여 뜨거웠지만 해가 지고 밤 8시가 되니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자켓을 걸쳐야만 하는 추운 날씨였다. 지중해 바다가 바로 옆에서 그런지 바람은 늘 불고 있었지만 사막 바람이 아니라 먼지가 없어서 좋았다.

수도: 튜니스
수도 인구는 약 220만 명
인구: 천백만
면적: 남한의 1.7배
날씨: 여름에는 덥고 건조 (평균 26도)
겨울에는 따뜻하고 비 (평균 11도)
화폐: TND 튜니스 디나 1$= 1.6 TND
공항 은행이나 시내 은행에서 환전 가능
수입원: 지중해와 접해 있어 농업과 무역 발달
관광업이 주된 수입원 (외국 관광객:연간 800만명)
올리브 (스페인 다음으로 생산량 세계 2위)
주요 관광지: 카르타고, 시디부사이드, 야스민 하마멧, 두가, 구시가지 등

<야스민 혁명>
현재 계속되고 있는 중동의 민주화 사태의 진원지가 바로 튀니지였기 때문에
치안이 불안하여 혹 위험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었다. 가족들도 조심
하라고 성화였다. 그러나 실제 방문해 보니 크게 위험한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하빕 부르기바 거리에서 작은 데모가 있었는데 평화롭게 진행되다
자진 해산하였다.

튀니지 사람들은 2012년 12월에 일어났던 사태를 혁명이라고 불렀다. 아랍어로는
싸우라이다. 특별히 야스민 혁명이라고 불렀다. 2012년 12월, 튀니지의 26세
젊은 청년이 경찰의 노점상 단속으로 생존권을 위협 받자 자살로 항의를 하였다.
이건이 발단이 되어 튀니지의 민중은 반정부 시위로 독재정권에 저항하였다.
2013년 6월에 내가 튀니지를 방문하여 전통 거리인 하빕 부르기바를 걸어갔을
때도 역시 길거리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이들의 생존이 달린
장사였다. 생존이 달린 장사를 못하게 막았으니 그 청년은 가장으로서 심한
좌절감을 느껴 자살을 했을 것이다.

민중들의 반정부 투쟁은 2011년 1월, 튀니지 전역으로 확대 되었다. 그리고
군부가 중립을 지킴에 따라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전용기를 타고 망명
하면서 24년간 유지되었던 독재 정권이 붕괴되었다.

야스민 (Jasmine)이 튀니지를 대표하는 꽃이기 때문에 ‘야스민 혁명’으로
언론에서 불리워졌다. 야스민 혁명의 불똥은 중동 전체로 옮겨 붙었고 시리아는
지금도 내전을 계속하고 있다. 튀니지의 야스민 혁명의 불똥은 바로 옆나라 리비아, 그리고 이집트, 알제리, 모로코, 예멘, 요르단, 바레인, 오만, 시리아 등으로
다른 아랍 국가들에도 확대되어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고, 예멘의
압달라 살레 대통령은 물러나고,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 등을 무너뜨렸다.

설령 정권이 바뀌지는 않았어도, 요르단이나 바레인 그리고 오만 등에서도 심한
데모가 일어나 정권들이 데모들을 진압하느라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리아의 바샤르 대통령은 희생자가 10만명이 넘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튀니지에 관한 더욱 자세한 사항은 아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이곳 홈페이지에는 사진을 올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다음 카페와 다음 블로그에
튀니지 사진들을 올려 놓았다. 필요하신 분들은 방문하여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튀니지에 관련한 더욱 자세한 세부사항도 역시 카페나 블로그를 방문하면
볼 수 있다.

다음카페: 성지순례와 중동여행 카페 cafe.daum.net/jordantour
다음블로그: 중동여행의 달인 blog.daum.net/joubf

암만, 요르단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