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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요르단이란?
요르단을
아시나요? 요단강은 알아도 요르단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내가 이곳
요르단에 와서 느낀 것은 요르단이 성경에서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이 언급되었을 정도로 곳곳이 성서와
관련된 지역으로 내가 구약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느낌이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 그리고 그의 후손
모압과 암몬, 에서, 모세와 이스라엘의 출애굽 38년의 역사,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솔로몬,
엘리야, 엘리사, 호세아, 세례요한, 예수님, 사도바울 등등 이 정도면 성경에서 이곳이 없으면
이야기가 전개가 안 될 정도이다.
2000년
교황 요한바오로 II세가 와서 이곳의 5곳을 성지로 인정하였는데 이는 예수님이 세례받은 곳인
베다니, 모세가 약속을 땅을 바라보며 죽은 느보산, 세례요한의 순교지 마케루스, 엘리야의 고향
디셉(텔엘리야스), 마리아가 현신했다는 안자라교회이다.
더구나
이곳 요르단은 초기 인류문명의 보고로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지리적 여건상 요르단은
중동에서도 그 중간에 있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면에 있어
교차로로서의 그 역할을 함으로 인류역사상 강대국들이라고 하는 나라들은 모두 이곳에 자취를 남겨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속설에 의하면 이곳 요르단과 이스라엘, 시리아지역(통칭 빌라드샴
또는 비옥한 초생달지역이라 칭한다)을 지배하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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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르단의 역사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요르단 지역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50만에서 8천년전
요르단의 아즈락지역과 남부 타바가(Tabaga) 그리고 동부 사막지역등에서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가 나온다.
그
뒤로 신석기시대(BC 8000년에서 4500년)에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페트라에서 가까운 베이다지역,
여리고를 중심한 요르단계곡, 그리고 암만근교의 에인가잘(Ain Ghazal)지역에서 자연적인
농경사회의 발달과 종교적 의식이 행해졌다는 증거인 신상들이 발견되었다. 이 얼마나 태고적 이야기인가?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한국에서의 내 생각을 단숨에 몇만년의 역사로 돌려버리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역사시대는 문자로 기록이 남아있는 청동기시대(BC 3500-2000)부터
말한다. 청동기시대는 도시국가의 형태를 띠며 이 지역 저 지역으로 흩어져 사람들이 살았다. 집들을
만들고 도기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농사기술과 도구들을 발전시켰다. 특별히 성경에서 나오는 아브라함도
후기 청동기시대 약 BC 2000년경의 사람인 것이다. 청동기를 지나 철기시대(BC 1200-332)로
접어들면서 나라형태가 이루어지면서 구약사건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일어난다. 특히 요르단 지역에는
에돔, 모압, 암몬, 아모리족속의 나라들이 있었다.
이후
이 지역은 페르시아(BC549-331), 알렉산더(BC332-63), 나바테안(BC400-AD160),
로마(BC63-AD330), 비잔틴(AD324-AD632), 이슬람(AD634-1516), 오스만터키(AD1516
-1918), 영국(AD1919-1946)등 제국들의 통치하에 놓여진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그 시대 최고의 문명을 이루고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제국들은 이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래서
이 지역을 다스리면 세계를 다스리고 이는 곧 인류문명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이 있다. .
1946년
5월 25일 런던협정에 의해 독립한 요르단 하시마이트왕국은 압둘라 토후를 초대왕으로 삼는다.
1951년 압둘라 국왕이 예루살렘의 알 악사사원에서 피살됨으로 그의 장남인 탈랄국왕이 즉위하나
단 1년만에 왕위를 17세의 후세인에게 물려준다. 후세인 국왕은 1998년 2월에 서거하기까지
4차에 걸친 중동전쟁 와중에서 요르단 서안지구(전국토의 약 40%)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에게
넘겨주는 아픔(1967.6.5)이 있었지만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함(1994.10.26)으로써
대외외교의 수완가로서, 중동평화를 위한 중계자로서, 세계사에 위대한 자취를 남겼으며, 현재는
그의 장남인 압둘라 II세가 왕위를 이어받아 요르단을 통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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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르단에 대한 일반정보
요르단의 공식국명은
THE HASHEMITE KINGDOM OF JORDAN(요르단 하쉬마이트 왕국)이다. 지리상 위치는 북위
28-33도 및 동경 35-39도에 위치한 국가로서 중동의 중심부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이스라엘, 북쪽으로는
시리아, 동쪽으로는 이라크, 남쪽으로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집트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91,869Km2
이다
기후는 여름에는
고온건조(8월(섭씨 18-32도))하며, 겨울철에는 눈도 내릴 정도로 쌀쌀하다(1월(섭씨 4-12C)),
수도 암만등 주요도시들은 해발 1000m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어 다른 중동보다 시원하며 반면에 휴양지 사해는
해저 400m에 위치해 있는 독특한 지형구조를 가지고 있다
요르단의 총인구는
560만명(2004년)정도이고, 이들 대부분은 사막의 베드윈과 팔레스타인에서 온 피난민들이다. 특히 수도
암만 인구중 7-80%가 팔레스타인으로 이루어져 있어 민족간 갈등이 심하다. 이들의 공용어는 아랍어이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요르단의 국교는 물론 이슬람교이나 기독교도 총인구의 약 7%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3. 요르단에 대한 여행정보
1) 입국사증은
어떻게? : 우리나라와 사증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입국전 사증을 발급받아야 하나 (주한 요르단명예영사관),
입국시 공항에서도 발급받을 수 있다.
o 주한 요르단명예영사관
연락처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계동 현대화재 해상보험 해외영업부
- 전화번호 : 02-3701-8474
2) 한국식품이나
식당은? : 요르단에는 한국식당이 없다. 중국식당과 일본식당은 있다. 최근 수퍼마켓에서 일본산 또는 중국산
간장, 냉면, 참기름 등 일부 식품이 판매되고 있으나, 가격이 비싸고 수량도 많지 않음.
3) 전기 :
220V / 50Hz 임.
4) 암만시내
한인교회
- 연락처 : 한인연합교회(79-5844398), 열방교회(79-5087865)
5) 한국대사관
- 주소 : Jabal Amman, 4th Circle, Amman(P.O.Box 3060, Amman
11181, Jordan)
- 전화번호 : (962-6)593-0745/6
- FAX : (962-6)593-0280
- E-mail : jordan@mofat.go.kr
- 홈페이지 주소 : http://www.mofat.go.kr/jordan/
6) 환율 :
US$ 1 = JD 0.708(미달러에 대한 고정환율)이며, 암시세는 없음.
7) 한국과의
시차
- 한국보다 7시간 늦음(여름철 섬머타임을 실시할 때에는 한국보다 6시간 늦음)
4. 요르단의 성지
1)
롯과 관련된 곳
-
소돔과 고모라 :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불 심판을 받아 멸망한 곳
- 롯의 동굴(소알) : 소돔에서 심판을 피한 롯이 그의 두 딸과 기거한 동굴
2) 야곱과 관련된 곳
- 마하나임 : 하나님의 군대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곱을 보호하고 있음을 보여준 곳
- 얍복강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최종적으로 건너야 했던 강
- 브니엘 : 얍복강을 건너기 전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축복으로 받은 곳
- 숙곳 : 얍복강을 건너 형 에서를 만나고 나서 잠시 야곱의 가족들이 머물렀던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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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세와 출애굽역사와 관련된 곳
- 와디아라바 :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데스바데아에서 약속으로 땅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에돔영토를 거슬러 아카바 홍해변으로 내려온 길
- 보스라 : 한때 에돔왕국의 수도
- 부논 : 구리광산이 있고 와디아라바 지역을 관리하는 중심도시
- 아카바 : 요르단 유일의 항구도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을 경과하여 에돔왕국을 돌아
북쪽으로 진군한다.
- 페트라 : 에돔왕국의 수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나바티안 문명 유적지
- 오봇 : 출애굽경로에 있는 도시
- 이예야바림 : 출애굽경로에 있는 도시
- 세렛강 : 에돔과 모압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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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락(모압평지)
: 모압왕국의 수도
- 아르논골짜기 : 모압왕국과 아모리왕 시혼의 국경, 요르단의 그랜드케년
- 디반과 아로엘 : 후기 모압왕국의 수도이자 출애굽당시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정복전쟁이 시작된 곳
- 마다바 : 요압장군이 아람군대를 파한 곳, 비잔틴시대 초기 기독 교 유적지, 특히 마다바 성죠지성당의
바닥에 깔려 있 는 모자이크지도로 유명하다
- 느보읍과 느보산 : 모세가 마지막으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죽은 곳
- 싯딤골짜기 : 이스라엘백성의 최종 집결지이자 이곳에서 모압여인과 음행하다가 벌을 받은 곳
- 아담마을 : 출애굽당시 요단강물이 넘친 곳
4) 엘리야와 관련된 곳
- 엘리야의 고향 디셉 : 엘리야의 고향으로 엘리야는 이곳에서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아합왕에게 이스라엘에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함
- 그릿시내 : 아합왕을 피해 잠시 숨은 곳,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가져다 준 곳
- 요단강 : 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선, 요단강은 찬송가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기위해 건너야 하는
강으로 표현된다
- 병거타고 하늘로 승천한 요단동편 지역 : 요단강을 건너온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곳에서 마지막 작별을 하고
불마차가 나타나 격리되면서 회리바람타고 엘리야가 승천 한 곳이다
5) 세례요한과 관련된 곳
- 세례요한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광야 : 엘리야가 승천한 곳으로 세례요한이 그의 공생애 기간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곳
- 세례요한의 순교터 마케루스 : 헤롯의 부정을 폭로하다가 세례요한이 순교한 헤롯하궁
6) 예수님의 발자취
- 요단동편 베다니, 예수님의 세례터 :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곳,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온 곳
- 거라사 :귀신들린 사람을 살리기 위해 2천의 돼지를 수장시킨 곳
- 안자라 :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고 마리아가 현신한 곳
7)
기타
- 암만:암몬족속의 수도, 우리아장군의 비극적인 최후가 스며있는곳
- 토비아 왕조의 성, 이락 알 아미르 : 바빌론 유수후 이스라엘 성전건축을 방해하였던 토비아왕조의
수도
- 제라쉬 : 천개의 기둥도시라 불리는 로마유적지, 얍복강변의 데카폴리스중 하나
- 룻의 고향 모압평지 : 다윗왕의 증조할머니 룻의 애뜻한 사랑이 서려있는 곳
- 사해 : 세계에서 제일 낮은 곳으로 염분이 바닷물의 5배나 되 둥둥뜨는 곳
- 마인온천 : 헤롯대왕도 즐겨 찾았다는 폭포 유황온천
- 와디럼 : 아라비아로렌스 촬영지로 근대 아랍혁명의 근원지
- 초기 기독교인들의 피난처,펠라 : 디아스포라의 기독교인들이 피난와서 생활했던 곳
- 길르앗 야베스와 사울과 입다 그리고 길르앗 산지 마을들
- 호세아 선지자의 고향,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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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리아의 일반개황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우리나라보다는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의 교류가 더 많다. 중동전쟁때
북한 조종사들이 이들과 함께 싸우다가 죽었기 때문에 아직도 이들은 북한을 혈맹으로 보고 있다.
시리아에는 실질적으로 북한사람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시리아의 상황이 북한과 비슷하여
곳곳에 아사드 전임 대통령의 동상들과 대형 사진들이 서있어 북한의 김일성 동상과 너무 닮았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와는 아직도 정식 국교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이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들어가 보면 우리나라 현대, 기아차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고 상점에는 LG와 삼성의 전자제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이것은 시리아 정부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정책을 쓰기 때문에 값싸고 품질 좋은 한국상품들을 이 사람들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본래 특징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신을 거부하는 체제이나, 시리아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회교국가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곳곳에 모스크와 교회건물들이 세워져 있고
신앙활동을 열심히 한다. 시리아의 기독교는 전체인구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많을 뿐 아니라
최초로 크리스쳔이라는 이름이 불려진 안디옥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기독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가 시리아다.
서방언론을 통해서 시리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두렵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시리아를 방문하지만 막상 시리아에 오면 순박한 시리아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고 우리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리아에 입국하고자 할 때 주의할 사항은 요르단과는 달리 이 나라는 골란고원문제로 이스라엘에
대해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여권에 이스라엘 스탬프가 찍혀 있으면 어떠한 명분이라도
입국이 불가능하므로 주의를 요해야 한다. 심지어 국경에서 이스라엘과 맞닿아 있는 요르단과 이집트의
국경 도장이 찍혀 있으면 발견하여 입국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도장만 없으면 국경에서 한국사람은
비자피만 내면 입국이 허용된다.
시리아의 정식국명은 시리아 아랍 공화국(Syrian Arab Republic)이다. 면적은
186,480㎢으로 한반도의 4/5정도의 크기이다. 시리아 역시 중동의 중심부에 위치한 나라로
북쪽으로는 터어키와 동쪽으로는 이라크, 남쪽으로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서쪽으로는 레바논과 약
180km에 달하는 지중해 해변을 끼고 있다. 주요 강으로는 다마스커스 시내를 흐르는 바라다강과
하마와 홈스의 오렌토스강 그리고 동부지역을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이 있다. 인구는 약 1,900만명정도(2004년)이며
수도는 다마스커스(Damascus, 500만명)이며 그 밖에도 알레포(300만), 홈스(150만),
하마(150만), 라타키아(150만), 팔미라등 역사가 깊은 도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섭씨 32도정도, 겨울에는 섭씨 10도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아랍인(88.8%)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쿠르드인(6.3%)도 북동쪽으로 상당수가
거주하고 있다. 시리아는 물론 대외적으로 무슬림 국가로서 수니파가 72.6%, 시아파가 10.4%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기독교인구가 13%, 이슬람의 이단인 드루즈파도 3%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아랍어이며 프랑스 통치를 받았기 때문에 불어와 영어가 통용되기도 한다.
프랑스로부터 1946. 4. 17일 독립했다.
시리아의 화폐는 파운드(Syrian Pound)로 1 US Dollar에 약 53 SP 정도
한다. 시리아는 비옥한 농경지를 보유하고 있는 서부지역에 주로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면, 밀, 채소, 올리브등을 수출하고 있다. 자급자족을 할 정도의 석유가 생산되고 있으며 기타
면직물이나 다양한 수공업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동부지역은 사막지형을 이루고 있다. 1인당 GDP는
약 1230$ 정도이다. 현재 시리아 대통령은 바샤르 아사드로 그의 아버지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으며
안과의사 출신이다.
시리아의 시차는 GMT + 2 이며 전기는 220V, 50HZ를 쓴다. 또한 생선과 야채생산이
풍성하여 다른 중동국가에 비해 시리아는 음식의 값이 싸고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정치와 관련된 발언은 지극히 조심해야 한다. 언제,
누가, 어디서 들어 문제를 삼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국기는 가로로 삼등분 되어 빨강색,
흰색, 검정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는 아랍혁명 깃발에서 도입된 것이다. 흰색 바탕에 2개의
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아랍국가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1958년 이집트와 아랍연방공화국을
세울 때 두 나라의 통합을 의미한다. 나중에 참여하려던 이라크는 별이 3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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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리아의 역사
시리아는 지중해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 그리고 이집트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비옥한
초생달지역 또는 레반테 지역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3개 대륙을 이어주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나라의 침공을 받고 그 영향아래 있어 시리아의 역사는 곧 중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BC 6600 지중해 해안지역의 도시국가 우가릿 왕국(BC 6600)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마리왕국등 수메르의 도시국가, 사르곤대제의 아카드 왕국(BC 2334-2279), 힉소스와 이집트왕국(BC1700년경),
앗시리아제국, 미타니제국(최초 마차를 전쟁에 사용), 힛타이트제국(BC 1365), 블레셋과
히브리인 제국(BC 12세기초), 알렉산더와 그리스제국(BC 333), 로마와 비잔틴제국, 이슬람의
움마이야왕조, 압바스왕조, 십자군전쟁, 살라딘의 아유브왕조, 맘룩왕조, 몽고제국, 오스만투르크제국(1453-1922)등
세계의 열강들의 각축장이 바로 시리아였다.
성경적으로 보면 이곳은 셈의 다섯 번째 아들인 아람의 후손들이 정착하여 살았던 곳이다. 히브리어로
이곳에 사는 시리아 사람들을 아람인이라고 했다. 아람에게는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등의 아들이
있었다(창10:22,23) 아람인은 처음에는 유목민이었는데 BC 1500년경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북상하면서 식민지를 건설하고 살았는데 그중에 하나가 하란이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장가보내기 위해 하인을 보낸 고향이 밧단아람인 것을 보면 아마도 아브라함도 이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신명기 26:5에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더욱 확실하다.
지금도 시리아 알레포 고성에 가면 아브람의 평상이 있던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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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300년경 시리아지역에서 히타이트세력이 붕괴하자 그때까지 유프라테스강 동쪽지역에 있던 아람인들은
서쪽과 남쪽으로 진출하여 하마와 다마스커스지역으로 진출하여 이곳을 그들의 수도로 삼았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시기와 같은 시기이다.
다윗왕 시절 암몬왕 하눈은 다윗의 조문사절단을 욕보임으로 선전포고하였으며 최후의 일전을 위해 아람의 용병들을
고용하여 마다바평원에서 싸우게 하였으나 아람의 용병들이 도망하였고 그 이후 아람은 하닷에셀을 중심으로 다시
이스라엘과 싸우게 되나 패하여 화친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을 섬기게 된다(삼하10장)
아람인은 일찍부터 상술이 뛰어나 앗시리아, 바빌론으로 진출하여 자연스럽게 이들이 쓰는 언어가 국제무역의
공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항상 몇 개의 군소 부족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강대국들의
침략에는 스스로 저항하여 독립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람의 주요도시는 다메섹, 하마, 그술, 마아갓, 르홉,
돕, 소바등이 있었다. 특별히 아람의 왕으로 벤하닷이란 이름이 공통적으로 나오는데 이는 하닷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하닷 또는 하다드는 아람의 비와 폭풍을 주관하는 신의 이름이다.
아합왕 시절 아람왕 벤하닷은 아람의 다른 32명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아합왕에게 금,은,보화와
처자를 요구한다. 처음에는 그 위용에 눌려 요구를 수락하나 정작 접수하기 위해 왔을 때 아합은 장로들의
결의대로 이를 거절하고 전쟁을 하기로 한다. 이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소년병사들을 앞세워 아람을 무찌른다.
다음해 아람은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하는데 이때 아람은 이스라엘의 신이 산의 신이고 이스라엘군이 산악전에
강하므로 평야에서 싸움을 시도하는데 이 때에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군은 하루에 10만이 넘는 아람군을
도륙할 정도로 대승한다. 그러나 아합왕은 승리에 도취되어 벳하닷과 조약을 맺어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이로인해
아합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왕상20장)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아람왕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있었는데 그는
존귀하고 큰 용사였지만 문둥병자였다. 그는 시녀의 말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와 문둥병을 낮게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엘리사는 그를 영접하지도 않고 그냥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한다. 이에 나와 보지도
않은 엘리사의 태도에 격분한 나아만은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며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종들의 권면으로 나아만이 요단강에서
몸을 씻자 그의 몸이 깨끗하게 되었다. 이에 나아만은 우상숭배를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다.
열왕기하 6-8장은 이스라엘과 아람과의 계속된 전쟁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 아람을 물리치는 내용이
나온다. 특별히 이중 하사엘이란 왕이 나오는데 그는 아합의 죄악을 치기위해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한 인물이다. 그는 원래 벤하닷 II세의 신하로서 왕의 병세를 물어보기 위해 엘리사에게 왔다가 그가 아람의
왕이 될 것을 예언받는다. 엘리사는 그를 보고 슬피울면서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아이를 메어치며 아이밴 부녀를 가르리라”라고
예언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엘리사의 인간적인 갈등을 볼 수 있다. 그는 엘리사의 예언대로 벤하닷 II세를
죽이고 왕에 등극한다(왕하8:7-15). 그리고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도륙과 많은 보물을 빼앗아 갔다(왕하10,12,13장).
그러나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왕이었을때 이스라엘의 요하스왕은 세 번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았다(왕하13:22-25).
신약시대에는 사도바울이 기독교인을 잡기위해 이곳 다마스커스로 왔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여 복음 전도자가
되었던 곳이며, 최초로 기독교인이라는 말을 사용한 안디옥을 중심으로 초기 기독교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곳이다.
그 후로 이 지역은 이슬람의 우마이야드조가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번창하였던 곳으로 세계의 문물이 모였던 곳이며
11세기부터 일어난 십자군들이 이곳에 성채를 건설하고 활약하였던 곳으로 아랍의 영웅 살라딘장군과 십자군들의
일진일퇴의 역사가 담겨있는 그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리아는 1516년부터 제 1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4세기동안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920년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았고 1941년 프랑스군이 독립을 승인, 1946년 프랑스군의 철수와 함께 완전 독립하였다.
1958년 이집트와 아랍연방공화국을 결성하였으나, 1961년 이집트의 영향력에 반발하는 바쓰당 좌익정권
성립과 함께 탈퇴하여 시리아 아랍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1967년에 있었던 아랍-이스라엘 전쟁간에 시리아는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에 빼았겼다. 이 문제로 계속해서
이스라엘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레바논 내전을 기회로 1976년이래 시리아군은 평화준비군으로 레바논에
계속 주둔해오다가 2005년 2월 레바논의 전총리 하라리의 암살로 인하여 UN 압력에 의해 2005년 4월
철수하였다. 최근에는 시리아와 이스라엘간에 골란 고원 반환에 대한 몇몇 평화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3. 시리아의 성지
1) 사도바울의 회심장소 다마스커스
- 낙마교회 :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도바울이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한 곳
- 다마스커스 성채 및 숙하미디아 : 세계최고의 도시중 하나이자 세계문명의 집산지
- 세례요한의 목무덤과 우마이야드모스크 : 이슬람 최고의 모스크
- 직가와 아나니야 교회 : 사도바울이 아나니야에게 세례를 받고 눈을 뜬 곳
- 창문교회 : 사도바울이 유대인의 박해를 받고 도망한 곳
2) 지금도 예수님당시 언어인 아람어를 쓰고 있는 마아룰라 : 아람어가 보존된 요새
3) 요새같은 교회건물 싸이드나야 : 초기 교회의 모델이 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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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로마황실의 안주인 줄리아 돔나의 고향 홈스 : 황제들의 어머니
5) 십자군 최후의 보루였던 크락데 슈발리에 : 가장 완벽하게 남은 십자군 성채
6) 오렌토스 강변의 물레방아 도시, 하마 : 강변의 물레방아로 로멘스가 살아있는 곳
7) 중동 최고의 휴양지 라타키야 : 지중해의 파란 바다가 부르는 곳
8) 최초의 알파벳을 사용한 우가릿트 : 가나안족의 왕국이자 언어의근원지
9) 아름다운 전설이 담긴 헬라식 도시 아파미아 : 시리아산 최고의 명마가 길들여지던 곳
10) 아브람 평상이 있는 알레포 : 고색창연한 고풍스런 도시
11) 주상성자 시므온 성당 : 고행을 통한 깨달음의 장소
12) 점토판의 도시 에블라 : 수많은 신화와 역사가 기록된 곳
13) 제노비아의 팔미라 : 백마 탄 제노비아는 욕심으로 인해 나라를 망하게 만든 장본인
14) 아브람의 나라 마리 : 마리왕국의 신민 “아브람”
15) 바울이 3년을 보냈던 아라비아광야의 도시, 보스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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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행전 9장에 언급된 직가 |
사막의 쉼터, 바그다드 카페 |
바울 창문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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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상 최초로 알파벳 문자를 만들었던 페니키아인들의 도시국가 |
산세가 험악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면서 기독교 신앙과 예수님이 쓰셨던 아람어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곳 |
바울 낙마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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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바논의 일반개황
레바논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아름답다’ 라는 것이다. 지중해의 쪽빛바다를 연해서
푸른 숲으로 우거진 산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사이사이 연분홍빛 기와들을 이고 서 있는 사각형
건물들이 나름대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그 속에는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수영하는 사람, 해안
길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 계곡에 가서 물장구치는 사람, 스키를 타러 해발 3000m 고산으로
올라가는 사람, 고기잡고 농사짓는 순박한 사람들까지 한없이 평화로운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한 한국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마도 내가 중동의
사막지대에서 15년이 넘게 살아서 그런 것 같다. 한국은 이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가. 금수강산인
우리나라에 산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레바논의 속을 들여
다 보면 포탄에 맞아 무너진 건물, 총탄자국이 아직도 선명한 버려진 건물들이 있어 지난 세기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레바논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한 나라가
레바논이다. 그러나 레바논의 다양성은 이뿐이 아니다.
레바논, 그 뜻은 “하얗다”라는 의미이다. 아랍어로 론은 ‘색깔’을 뜻하며 레반은 라반(Laban)에서
연유하는데 라반은 하얀색의 “양젖”을 의미한다. 즉 ‘양젖 색깔’ 곧 ‘하얀색깔’이라는 뜻이다.
이는 중동에서 몇 안되는 ‘만년설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양의 젖처럼 풍요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레바논의 국기를 보면 위 아래 빨간 줄이 있고 중간에 하얀 바탕에 레바논의
상징인 백향목이 그려져 있다. 하얀 바탕은 역시 ‘만년설’ 또는 ‘양의 젖‘을 의미하며 빨간
줄은 순교자의 피를 의미한다. 결국 평화와 풍요를 위해 흘려야 했던 그들의 아픔이 그들의 국기에도
나타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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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정식국명은 레바논 공화국(Republic of Lebanon)이다. 면적은 10,452㎢로 우리나라
경기도만한 크기이다. 남북으로 240km 동서로 85km 의 직사각형형태로 지중해변에 놓여 있는 레바논은
작지만 다양한 형태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는 약 240km에 이르는 지중해연안지대가 있고 이 연안길을
따라 레바논의 주요도시인 트리폴리, 비블로스, 베이루트, 시돈, 두로가 있다. 그리고 이 연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레바논 산맥이 있는데 이 레바논 산맥은 최고 높이 3069m의 쿠르넷 알 사우다산이 있어 고산지대에는
항상 머리에 만년설을 이고 있다. 이 산맥을 넘어가면 폭이 15-20km에 길이가 120km에 달하는 베카계곡이
레바논 산맥과 건너편 안티레바논 산맥사이에 있으면서 레바논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이 베카계곡의 동편에는
헬몬산(2814m)이 있는 안티레바논 산맥이 있으며 이 산맥을 경계로 시리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안티레바논
산맥은 레바논산맥과는 달리 나무가 거의 없는 벌거숭이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레바논의 남쪽으로는 이스라엘과
접하고 있어 항상 긴장된 지역이다.
레바논의 총인구는 약 410만명 정도인데 20개의 다양한 종교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동전쟁때 이민
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약 30만명 정도 있다. 이중에 한국인도 약 50명정도 이곳에 살고 있다. 수도는
베이루트(Beirut)로 대부분의 인구가 서부연안지역에 살고 있다. 베이루트의 인구는 약 200만명정도
된다. 언어는 아랍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으며, 불어와 영어도 통용된다. 특별히 이곳은 다른 중동국가와는
달리 일요일을 공식 공휴일로 삼을 정도로 기독교 인구가 많은데 인구의 약 38%가 기독교인이며 나머지 62%가
무슬림이다. 이들은 다양한 종교그룹을 이루고 있는데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그룹만 17개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기독교는 마로나이트, 그리스 정교회, 그리스 카톨릭, 아르메니언 카톨릭, 아르메니언 정교회,
칼디언스, 시리아 카톨릭, 시리아 정교회, 멜키트 카톨릭, 콥틱, 프로테스탄트등이 있고, 무슬림은 순니파,
시아파, 두루즈파, 이스마엘파, 알라위파, 누사리스파등이 있다.
레바논의 기후는 지중해 연안은 지중해성 기후로 평균기온도 여름에는 섭씨 30도정도이며 겨울에는 섭씨 15도
정도로 날씨가 좋아 걸프연안의 사람들에게 휴양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곳은 연중 강수량도 900mm에
달해 사시사철 녹음이 우거져 있다. 그러나 고산지대에는 11월부터 4월까지 눈이 내리며 베카계곡은 준스탭기후로
사막기후에 가까워 연중 강수량도 250mm 밖에 내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과
오렌토스와 리타니강이 흘러 농사짓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이처럼 레바논은 지형적인 특색으로 인해 하루에
4계절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레바논의 경제는 주로 관광업과 금융과 무역을 통해 이루어지며 현재 GDP는 195억$(2004년)정도이며
1인당 GDP는 4675$정도이다. 오랫동안 내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경제를 지금은 살려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레바논에 갈 때마다 느껴진다. 그들은 지금 과거 페니키아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한다. 그래서 내전기간동안
해외로 나간 자국의 우수한 인력들과 자본들이 돌아와 다시 자국에 투자되기를 원하고 있다. 레바논의 화폐는
레바논리라로 1$에 약1500리라 정도 한다.
2. 레바논의 역사
레바논의 역사는 성경에서 노아의 세명의 아들중 함의 네 번째 아들인 가나안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레바논은 가나안의 장자인 시돈(창10:15)의 땅이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함의 후손들이 차지한 지경을 수리아와 아마누스와 리바누스산으로부터 바다(지중해)와 대양(인도양)을
포함한다고 적고 있다. 그 중에서 가나안의 장자인 시돈은 이곳 레바논에 정착한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포도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포도주를 마시고 장막안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잠을 잔다. 이를 본 그의 아들 함은 다른 형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러자 다른 형제인
셈과 야벳은 옷을 들고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지 않고 덮어준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노아는 함의 자손인 가나안을 저주한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9:25) 그런데 함의 잘못을 왜 가나안에게 내렸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장자가 아닌
넷째 아들인 가나안에게 말이다. 아마도 함의 아들중 함이 가장 사랑한 아들이 가나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함이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하여 아버지로서의 아픔을 갖도록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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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가나안은 노아의 저주를 벗어나고자 노력한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첫째는 뛰어난 항해술(겔27:5-9)을
바탕으로 모든 형제들과 통상관계를 맺어(겔27:12-25) 부를 이루었으며, 그 대표적인 예가 두로 왕
히람이 다윗과 솔로몬왕 시절 성전건축용 백향목을 대주고 홍해 선단을 만드는데 도와주어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외교관계(대하2:3-16, 왕상5,7장, 왕상9:26-28)를 맺었고, 지중해 연안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지중해 상권을 장악하였다. 둘째로는 끊임없는 통혼정책으로 주변의 강대국들과 유대관계를 강화하며 자기들이
믿는 우상숭배(문화?)를 보급하는 등 국제외교의 선구자들이였다(삿3:6). 특별히 성경에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자녀들을 결혼시키는데(삿3:5-6) 그중에 시돈왕의 딸 이세벨이 아합왕과 결혼(왕상16:31)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알로 대표되는 우상숭배로 성경에는 언제나 저주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과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에게 정복되어 그들의 종이 된다. 특별히 성경에는 가나안 정복시
이곳 특히 두로와 시돈지방을 아셀지파에게 분배하나 이스라엘은 이곳을 정복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거민들과
함께 살았다고 나온다(수19:28,29, 삿1:31).
현재 레바논에 사는 가나안의 후예들을 우리는 특별히 페니키아(Phoenicia)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는
당시 이들이 생산하는 대표적인 상품인 티리언 퍼플(고동의 분비액에서 채취하는 붉은색 염료)을 의미하기도
하며 붉은색 피부를 가진 자라는 뜻으로 페니키아인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용어다.
이들은 1만개의 고동을 채취하여야 겨우 1g의 자색염료를 얻는 고가품의 티리언 퍼플과 이들이 세계 최초로
만든 유리제품 그리고 레바논산맥에서 나는 백향목등을 북아프리카와 유럽 등으로 비싼 값에 팔고 중동의 향신료나
이집트의 파피루스와 금, 그리고 유럽의 가죽제품등의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루었다. 이를 통해 BC
2000년경에는 레반트 지방 해안지역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북아프리카(카르타고)와 터어키 및 사이프로스
지역 그리고 지금의 스페인까지 식민지를 건설하여 지중해 상권을 인류역사상 최초로 장악하였다.
그러나 BC 9세기 초부터 내륙으로부터 밀려오는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페니키아의 여러지역이 지배를 받고
공물을 바쳐야 했고, BC 538년에는 페르시아에, 그리고 그 후에는 알렉산더에게 점령당했다가 BC 64년에는
로마의 시리아 속주에 통합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의 예술품에는 아히람(BC 11세기말에 활동한 비블로스 왕)의 석회암 석관과 상아세공과 목각장식,
금속세공품 그리고 BC 1세기경 세계 최초로 발명된 유리를 불어서 만든 각종 제품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페니키아인들이 인류역사에 공헌한 것중의 하나는 22개의 자모로 이루어진 페니키아 알파벳 문자의
발명과 그의 보급에 있다. 비블로스에서 발견된 아히람왕의 석관에 이 알파벳이 쓰여져 있는데 이는 이들이
BC 14세기에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페니키아의 알파벳은 이들의 해상무역을 통해 유럽과
기타 여러 나라로 보급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의 종교는 자연의 힘과 자연현상에서 영감을 받은 다신교로서 신들의 아버지인 엘이 모든 신들을
지배했고 엘의 가족 가운데 폭풍우의 신인 바알신과 다산과 전쟁의 여신인 아스다롯 여신이 가장 중요한 신이었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이후 이곳은 아랍 무슬림 국가의 통치를 받았다가 1차 세계대전을 기회로 1916년 영국과
프랑스의 비밀협정인 사이크스피코협약에 의해 프랑스가 이 지역을 시리아와 함께 1918년부터 1943년까지
통치하였다. 1920년 아랍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프랑스는 이를 진압하고 이 지역에 프랑스
문화를 주입하고 서유럽문화의 교두보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일파인 마로나이트파가 다수
사는 레바논을 시리아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행정구역을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이 지역을 장악했던 영국은 이스라엘을
그리고 프랑스는 레바논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것에는 항상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1943년 레바논은 의회가 구성되고 국민협약에 의해 종파간, 정파간 정치권력을 안배하여 마로나이트출신
기독교인이 대통령을, 수니파가 수상을 시아파가 국회의장을 선출하고 국회의원은 크리스천대 무슬림을 6:4로
선출하기로 함으로써 시리아와는 별도의 국가로 1943. 11. 22일 독립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중동전쟁이 일어나자 반정부적인 무슬림과 친정부적인 기독교간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팔레스타인 난민문제와 헤즈블라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활동으로 레바논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졌다. 더구나 인구분포로 정권을
나눠가진 레바논에서 1970년대 들어 무슬림의 인구가 더 많아지자 이들은 정권장악을 요구하게 되었고 1975년부터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이는 각 종파간의 기득권 싸움으로 촉발되었지만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개입과 강경
아랍국가와 온건 아랍국가간의 대립, 아랍과 서방간의 대립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1990년까지 장기화되었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 대사관의 도재승서기관이 납치되어 우리의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레바논은 이로 인해 많은 기독교인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갔고 관광과 금융을 주로 하던 레바논의 경제
또한 침체를 면치 못했다.
다시 맺은 국민화해헌장(Taif 협약)에 의해 권력배분은 그대로 하되 국회의원수를 조정하여 크리스천대
무슬림을 기존의 6:4에서 4:6으로 결정하므로 내전에 종지부를 찍었고, 2000년에 이스라엘군의 철수가
있었으며, 2005년 2월에 시리아의 사주를 받아 자행된 폭탄테러에 의해 전임수상 하라리가 죽자 UN의
압력으로 시리아군마저 철수함으로써 레바논은 이제 외국 군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관광수입이 매년 증가하고 외국인들의 투자가 늘어나 내전의 상흔을 씻어내고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나는 듯 했다. 그러나 스스로 힘이 없는 자주는 언제든지 메아리없는 외침이다. 2006. 7월 레바논에
거주하고 있는 헤즈블라와 이스라엘간의 전쟁으로 또다시 레바논은 전쟁의 소용돌이속에 빠져들고 만다. 진정한
평화는 스스로에게 힘이 있을때 찾을 수 있음을 레바논을 통해 배울 수 있다.
3. 레바논의 성지
1) 평화를 원하는 도시 베이루트
- 베이루트의 상징 비둘기 바위 : 평화는 어디에
- 아름다움 석회동굴 제이타 동굴과 개강 : 1,2층구조의 아름다운 석회동굴
- 주니에의 성모상이 있는 하리사 : 마리아상이 굽어보는데....
2) 유리와 자색염료의 도시 시돈
- 엘리야의 로멘스 사르밧
- 스로보니게여인과 마리아가 머물렀던 만타라 동굴
3) 가나안의 대표주자 히람왕의 두로 :
4) 알파벳의 전파자 비블로스
5) 백향목과 칼릴지브란의 고향 브샤레
6) 레바논의 빵바구니 베카계곡
7) 바알과 제우스로 이어지는 웅장한 신전터, 바알백
8) 우마이야드 왕조의 계획도시 안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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